올해 5월 12일 한 선배 목사님을 통해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한 후 두 달의 시간이 흐르도록 기도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려움과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다시 인도네시아로 가야하나?” 라는 두려움과 “지금에 와서 어떻게 다시 선교사로 나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움’은 20년 전 말라리아로 건강을 잃고 선교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좌절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면, ‘염려’는 그 어느 때보다 선교가 외면을 받고 있는 이 때에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달 동안 두려움과 염려 속에서 기드온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내용은 ‘한 사람의 후원자’와 ‘한 협력 단체’ 그리고 ‘한 후원교회’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 기관 그리고 교회에서 후원을 시작하겠다고 한다면 이 길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흔들리지 않고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두 달을 기도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기도가 응답받았습니다.
이제 담대함으로 이 길 위에 서겠다고 고백합니다. 앞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부르심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저는 8월 3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하라판인다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는 일로 나아갑니다.학기 중에는 가르치는 사역을 합니다. 방학 중에는 만 칠천 오백 여개의 섬에 흩어져 사는 소수부족을 위해 성경교사를 세우는 일은 할 것입니다. 자세한 소개는 다음 달 소식지를 통해 전하겠습니다.
세 번의 부르심
저의 첫 번째 부르심은 성경번역 선교사로 인도네시아 이리얀자야에서 성경을 부족 언어로 번역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사역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13년간 준비한 성경번역 선교사의 길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고 파송까지 받았는데 멈추게 하시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부르심은 말씀을 맡은 자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교회로 돌아와 목회를 하는 현장 속에서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능통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르심을 위해 40세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 헬라어를 잘 배우고 싶었습니다.
바른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어떤 것이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충분치 않았지만 그러나 집을 짓기 위한 재료들을 모으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경 해석이라는 집을 짓는 건축의 시작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Trinity Western University에 속한 ACTS Seminary에서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섬기며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자의 척박한 삶속에서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세우는 사역은 생존을 위한 ‘숨’과도 같은 것임을 경험하였습니다.
큰 아이의 대학을 한국으로 결정하면서 21년 8월에 저희 가정은 귀국하였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계속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 싶었지만, 갈등과 반목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연속된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 번째 부르심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번 부르심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이해가 되었습니다. 전도자로, 말씀을 맡은 자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순례자로, 철저히 대가를 지불하며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한 사람의 성도로 이끌어 오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부르심까지 오는 동안 한 명에서 세 명으로 늘어난 아이들, 그리고 그 새 훌쩍 커버린아이들을 보면서, 나를 바라보고 계실 하나님을 생각해봅니다. 부르심을 받은 80세가 된 모세의 심정으로 가시떨기 나무를 바라봅니다. 이제 그 길 위에서 살아가려 합니다.
기도제목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도록 위해 기도해주세요.
인도네시아 비자 수속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인도네시아 하라판인다 신학교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 하나님께서 파송교회와 협력 교회 그리고 함께 동역할 사람들을 붙여 주시도록 기도해주세요.